학회 《그날이오면》을 제안합니다
학습은 부단하게, 실천은 진지하게, 삶은 유쾌하게!



아.... 길다.. 같이 책 읽자는 겁니다. 게시판으로 글 읽기 벅차시면 사회대나 중도 학관 등 자보를 확인하세요.


제안의 글

‘가르친다는 것은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는 경구가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배움의 내용이 밝고 희망찬 것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 자체가 이전의 앎에 대한 비판과 지속적인 자기창조의 과정이라는 사실에서, 지금은 아직 없는 가능성인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르침(배움)과는 떨어질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달콤한 장밋빛 희망을 약속하는 가벼운 말들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 역설적으로 현 시대의 대학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자본과 기득권에 대한 옹호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판과 성찰이 사라진 교육공간에서, 이제는 아무도 대학생을 ‘희망’이라 부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의 미래부터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대학생은 여전히 ‘희망’이어야 합니다. 이를 규범적 태도로 단정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실제 한국사회의 대규모 변화를 주도했던 역사가 있다는 점, 둘째, 주류 사회질서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점, 셋째, 인생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시기를 살고 있다는 점, 넷째, 의지대로 자신의 시간을 구성할 여지가 타 집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현 시대의 대학생들이 ‘희망’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자기성찰과 사회참여입니다. 사회 속 자신을 직시하고 가치관 속에서 민중의 삶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 셋 있습니다. 첫째, 독서입니다. 특히 고전은 시대를 꿰뚫고 인간을 통찰하는 엑기스 그 자체입니다. 둘째, 이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고 있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사회참여의 정수(精髓)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모순은 드러나고 허위는 벗겨지게 됩니다. 셋째, 공동체입니다. 파편화된 인격은 자신의 문제에만 천착할 수밖에 없고, 타인과 긴밀히 연결된 인격은 타인과 나의 관계를 돌이켜 공동체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직시하게 됩니다. 집단적 토론과 실천은 자기성찰과 사회참여의 기초가 됩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공동체에서의 삶이 대학생에게 필요합니다.


《그날이오면》이란 작은 학술공동체가 출발합니다.


《그날이오면》은 ‘학술공동체’라는 표면적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똑똑한 사람이 필요하겠구나”, “커리큘럼을 잘 짜야 성공할 수 있다”같은, ‘학(學)’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강박관념이 뿌리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당연히 ‘학’은 중요합니다. 학회가 추구해야할 하나의 목표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바로 ‘학’을 할 주체의 자세입니다. 어떤 자세로 공부에 임할지 이야기하지 않고서 학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닻 없이 배를 출항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인간애와 휴머니즘의 정신을 중심으로 우리의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기초하지 않는 학문은 인간을 저버리고 맙니다. ‘휴머니즘’이라는 단어는 로마의 희곡에서 나왔습니다. “나도 한 사람의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인간사에서 나와 무관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는 노예의 대사가 그 어원입니다.(Humanitas) 우리가 학을 하는 것도 결국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창백한 상아탑에 갇혀 우리와 다른 삶을 사는 이들과 물리적으로, 사회적으로 격리되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인간의 범주는 좁디좁습니다. 의식적으로 시야를 확장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물리적, 사회적 격리와 매체의 환상을 넘어서 장애인, 비정규직, 빈민, 이주노동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떻게 소외되고 있는지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회이지만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이러한 정신을 학회운영에도 반영해야 합니다. 서울대의 공동체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똑똑하고 말 잘하고 능력 있는 이가 공동체를 주도하고, 성실하고 착하지만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이들이 소외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학회가 엘리트의 향연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이끌며 인격과 학을 연마하고 그 성과를 확인하는 공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척도는 능력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둘째로, 진지한 학의 정신입니다. 학회는 구성원 모두가 오르는 시지프스의 언덕입니다. 질문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사유의 노고를 아까워하지 않는 곳이 학회입니다. 책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의 의견 없이 선배의 깜냥으로 이끌어가는 곳이라면 구성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현학적 말발로 지적 우위를 증명하는 곳이 아니라 지적 충격으로 밤잠을 설치는 진지한 공부를 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학회는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모여 현학을 즐기는 곳이 아닙니다. 학회는 모르되 묻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려운 고전과 부딪혀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의 공동체입니다. 텝스와 취업, 고시공부만으로 만들어진 인간성이라는 것은 신용카드 한 장의 두께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전과 토론으로 만들어진 인간성은 천년바위와도 같이 겸손하면서도 굳셉니다. 《그날이오면》이 진지한 태도로 우공이산(愚公移山)하는 대안적 학술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공부와 실천이라는 두 바퀴로 가는 수레를 함께 끌어봅시다. 학습은 부단하게, 실천은 진지하게, 삶은 유쾌하게! 마침내 이 수레가 대승(大乘)이 되어 사람이 사람으로 사는 세상을 위한 의미있는 한 걸음이 될 것을 믿습니다.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갈 당신을 기다립니다.


2010년 2학기 세미나


2010년 2학기 학회 《그날이오면》의 첫 세미나 주제는 다름 아닌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논의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그 근본적인 의미에서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상충되는 견해들을 검토하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데이비드 헬드의 『민주주의의 모델들』은 그 작업에 큰 도움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그러한 이론적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꼼꼼히, 더 나아가 비판적으로 읽어봄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현 주소를 가늠해 보고자합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연락: 장경훈(011-9067-5260)

전화 안 받을 땐, 문자 주시면 백푸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