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야만인" 경향신문 소개기사입니다.
[책과 삶]원시사회는 평화? 오히려 ‘전쟁터’였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고결한 야만인…나폴리언 섀그넌 지음·강주헌 옮김 | 생각의힘 | 656쪽 | 2만5000원

“나는 가능한 한 침착하게 허리를 굽히고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낮은 통로를 지나 널찍한 광장에 첫발을 내딛고서야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십여 명의 건장하고 발가벗은 땀투성이의 남자들이 우리를 무섭게 쏘아보며 커다란 활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 숨이 막혔다. 게다가 그들의 아랫니와 두 입술 사이에는 큼직한 풋담배 뭉치가 달라붙어 있어 모습이 더욱 흉측하게 보였다. 짙은 초록색을 띤 콧물이 콧구멍에서 뚝뚝 떨어졌고, 때로는 길쭉하게 늘어졌다.”

미국 인류학자 나폴리언 섀그넌이 1964년 아마존 강의 오지에서 야노마뫼 족과 처음 대면했을 때, 그 어떤 문명국가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원시 상태로 살고 있던 이 부족으로부터 그가 받은 첫인상은 대중문화가 묘사해온 아마존 원시 부족의 이미지와 겹치면서도 어긋난다. 대중문화 속 원시 부족의 이미지는 호전성과 순수성의 양극에 놓여 있다. 백인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이 없던 시절의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아마존 원시 부족을 호전적 야만인으로 묘사해왔다면,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을 비롯해 비교적 오랜 기간 원시 부족의 삶에 밀착해 제작된 영상물에서는 이들을 ‘문명의 얼룩에 찌들지 않은 순수한 인간’으로 그려냈다. 특히 <아마존의 눈물>에 감동했던 많은 한국인들에게 야노마뫼 족은 ‘조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들’로 각인됐다. 올해 일흔여섯이 된 노학자 섀그넌이 야노마뫼 족에 대한 평생의 연구성과를 집약한 <고결한 야만인>은 이 같은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논쟁적인 저작이다. 

▲ 호전과 순수성의 양극에 놓인
원시부족에 대한 통념에 정면 도전한 논쟁적인 저작


▲ 루소가 말한‘고결한 야만인’보다는
홉스가 말한‘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자연 상태의 인간을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


섀그넌이 야노마뫼 족의 거주지를 처음으로 찾은 것은 그가 20대 중반이었던 1964년 11월이다. 그는 야노마뫼 족이 당시 인류학자들의 일반적인 현장조사법으로는 적절하게 서술할 수 없을 정도로 미지의 부족이었다고 회고한다. “외부에서 유입된 질병으로 떼죽음을 당한 적도 없었고, 국경 주변을 확장해 가는 식민지배자들에게 대량으로 죽임을 당한 적도 없었다. 선교사들도 일부 마을에만 영향을 주었을 뿐이고, 대부분의 마을은 외딴곳에 있어 부족민의 수는 고사하고 얼마나 많은 마을이 있는지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야노마뫼 족에 대한 선행연구가 없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저자가 인류학자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17개월간의 첫 현지조사를 떠나기 전 그가 품었던 설렘과 흥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난다. 의식주 문제는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의사소통이었다. 야노마뫼 족에게 언어는 있었지만 그것을 기록할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하는 말을 기록할 수단을 직접 고안해야 했다. 생활의 불편과 언어 문제만 해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다. 섀그넌은 의외의 지점에서 벽에 부딪혔다. 야노마뫼 족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부족의 족보를 그리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최대한 많은 부족민들의 계보도를 완성함으로써 원시 사회에서 친족관계가 갖는 역할과 의미를 분석한다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러나 야노마뫼 족에게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꺼리는 ‘이름 금기’라는 것이 있었다. 이름을 모른 채 계보도를 그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야노마뫼 족은 보통 두 개 이상의 이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작업 속도는 더욱 느렸다. 게다가 오랜 발품을 들여 완성한 한 마을의 계보도를 폐기처분해야 하는 일도 생겼다. 그가 처음으로 머물렀던 마을의 부족민들이 그를 놀리기 위해 이름을 거짓으로 알려줬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전투 준비를 하는 야노마뫼족(왼쪽)과 평화롭게 공동작업을 하는 아마존의 다른 원시 부족(오른쪽). 자연상태의 인간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저자는 야노마뫼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연상태의 인간이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가깝다고 주장함으로써 인류학계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생각의힘·MBC 제공


여러 기술적인 어려움들을 점차 극복하게 된 섀그넌은 이때의 현지조사를 포함해 이후 35년간의 조사를 통해 두 가지 결론을 내린다. “야노마뫼 족의 세계에서 전쟁은 우발적이고 단발적인 위협을 넘어 만성적인 것이었다”는 것과 “대부분의 다툼과 전쟁이 여자 때문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둘 모두 대단히 논쟁적인 주장이다.

섀그넌에 따르면 야노마뫼 족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습격이다. 습격을 감행하는 이유는 거의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하기 위해서인데, 그 대상이 다른 마을에 사는 부족민들이라는 점에서 습격은 대개 마을간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형태의 습격은 ‘노모호리’(비열한 책략이라는 뜻)라고 불리는 행동이다. 노모호리는 의례적인 잔치나 물물교환과 같은 우호적인 명목을 내세워 다른 마을 부족민들을 초청한 다음 습격하는 행동이다. 노모호리에는 상대방을 안심시키기 위해 상대방이 믿을 만한 제3의 부족민들과 동맹관계를 맺어 안심시킨 다음 동맹 마을 부족민들과 함께 상대방을 기습하는 책략도 사용된다. 이 때문에 섀그넌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야노마뫼 성인 남성의 약 45%가 한 사람 이상을 죽인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이 여자를 둘러싼 갈등이라는 섀그넌의 주장 또한 기존 문화인류학계의 주장과 다르다. 문화인류학에서는 원시 부족들의 전쟁도 문명화된 국가들 사이의 전쟁처럼 식량이나 연료 등 물질적 자원을 둘러싸고 벌어진다고 본다. 반면 섀그넌은 전쟁이 인간의 번식 본능 때문에 일어난다고 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살인을 해본 경험이 있는 성인 남성(야노마뫼 족의 언어로는 ‘우노카이’)과 그렇지 않은 남성 사이의 결혼율과 자녀 비율을 제시한다. 일부다처제인 야노마뫼 족 사회에서 우노카이에게는 평균 1.63명의 부인이 있었으나 우노카이가 아닌 경우에는 그 절반 이하인 평균 0.63명이었다. 또 우노카이에게는 평균 4.91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평균 1.59명에 불과했다. 섀그넌은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원시 부족민 사회가 성과 연령에 따른 위계를 제외하고는 평등하다는 기존 인류학계의 주장은 허구이며 “야노마뫼 족 사회에서 부족민들은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친족의 수, 또 ‘우노카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주변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1968년 야노마뫼 족에 대한 섀그넌의 첫 저서 <야노마뫼-사나운 부족>이 출간된 후 그의 도발적인 주장은 미국 인류학계의 거센 반발과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섀그넌의 이론은 ‘인종주의’ ‘생물학 환원론’ ‘파시즘 옹호’라는 비판을 받았다.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가 한 토론회에서 “어떤 인류학자, 아마존 원주민을 오랫동안 연구해서 유명해진 인류학자로, 그 부족에게는 전쟁을 선호하는 유전자뿐 아니라 유아살해를 선호하는 유전자까지 있다고 주장하는 인류학자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라고 비판한 게 대표적이다. 섀그넌은 또 1980년대 이후 브라질 광부들이 자원을 채취하기 위해 야노마뫼 족들을 학살하고 약탈하는 데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야노마뫼 족이 호전적 부족이라는 그의 주장이 광부들의 약탈행위를 정당화해준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 비판은 한 언론인에게서 나왔다. 지난 2000년 언론인 패트릭 티어니는 <엘도라도의 어둠: 어떻게 과학자와 언론인이 아마존을 파괴했는가>라는 책에서 섀그넌이 1968년 의사 제임스 닐과 함께 문명국가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홍역 백신을 야노마뫼 족에게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영국 가디언은 티어니가 제기한 의혹을 소개하면서 ‘과학자들이 인종이론을 시험하기 위해 아마존 원주민들을 죽였다’고 보도했다. 미국 인류학회가 2000년 자체 조사위원회를 꾸려 티어니의 주장들을 기각하긴 했지만 이 사건은 섀그넌의 명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섀그넌을 둘러싼 논란은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인류학자 마셜 샬린스는 지난해 미국 과학아카데미가 섀그넌을 회원으로 선출한 데 항의해 과학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반납했다. 샬린스는 지난해 <고결한 야만인>이 출간된 후 워싱턴 포스트에 책을 비판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에드워드 윌슨,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처럼 인간과 사회를 진화론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섀그넌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타적 유전자>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매트 리들리는 지난해 <고결한 야만인>이 출간되기 직전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글에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섀그넌의 길을 따르고 있다”며 “최근의 연구는 오늘날과 과거의 소규모 사회에서 폭력에 의한 죽음은 매우 흔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루소가 말한 ‘고결한 야만인’보다는 토마스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자연 상태의 인간을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덧붙였다. <총, 균, 쇠>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난해 한국에서도 출간된 <어제까지의 세계>에서 섀그넌의 주장을 인용해 대부분의 원시 부족들이 “폭력과 전쟁의 순환에 갇혀 있다”고 썼다. 

섀그넌은 책의 마지막 세 장을 자기 옹호와 동료 인류학자들에 대한 비판에 할애하고 있다. 그는 “과거 20년 남짓한 기간에 미국의 문화인류학계는 무분별하게 과학이란 개념을 포기하는 지경까지 치달았다”며 “문화인류학을 좁은 의미에서 주로 소수 집단을 옹호하는 행위, 다시 말하면 정치행위로 정의하는 학자들이 인류학이란 학문 전체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는 셈”이라고 공격한다. 그러나 동료 인류학자들에 대한 그의 비판은 때때로 엄밀하기보다는 감정적이다. 경합하는 여러 주장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고 이 책을 읽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