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해도, 정부 보조를 받아도, 장애인 삶은 벼랑 끝"
[인터뷰]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최옥란 열사 10년 장애인의 삶은 그대로”
박장준 기자 | weshe@mediatoday.co.kr  
[공지] 선관위 실명인증 정책에 항의, 댓글을 차단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장애인의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외치다 세상을 떠난 최옥란씨. 김대중 정부가 도입했던 기초생활보장법(2000년)은 장애인들의 의료, 교통, 교육비조차 감안하지 않은 생계비 산정 기준 때문에 생계비 수급권자를 빈곤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흐른 10년. 지난 22일 여의도에서 만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기초법 때문에 장애인들이 더 가난해졌고 자살까지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최씨와 함께 투쟁했던 동지였다.

박 대표는 고 최옥란씨에 대해 “장애, 가난, 여성이라는 삼중고에 차별을 겪어온 당사자”라며 “최옥란 열사는 국가가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사를 강요하면서 사회적으로 낙인찍는 방식에 대해 반대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복지를 확대하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해 “결국 강한 자만 살고 약한 자만 죽는 이 사회를 그대로 인정하라는 것”이라며 “정글의 세계에 살라고 강요하면서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공동체를 얘기하는 건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최씨의 죽음 이후 10년 동안의 변화에 대해 박 대표는 저상버스 도입 등 장애인 관련법이 많이 생긴 점을물리적인 변화가 있었다면서도 “최옥란 열사가 돌아가신 때와 비교해 장애인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서울시의 저상버스 비율이 24%면 장애인 이동권이 24%만큼 좋아진 것이냐”며 열악한 장애인 교육권과 노동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애인이 버스 탈 일이 있어야 저상버스도 의미가 있다는 얘기다.

박경석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의 장애인 프로그램도 도마에 올렸다. 그는 장애인에게 연극이며 견학 등을 시키고 비장애인에게 휠체어를 태우고 장애인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애인 정책을 들어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최옥란 열사 10주기다. 그와 함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를 어떻게 기억하나.
“최옥란 열사는 최옥란 열사는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이었고, 결혼해서 아이도 있던 여성이었다. 장애, 가난, 여성이라는 3중고에 차별을 겪어온 당사자였다. 2001년 12월에 명동성당에서 기초생활보장법의 문제점을 얘기하면서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는 농성을 시작했다. 당시 생계비는 28만 원이었다. ‘내가 자살하지 않길 바란다’며 시작했지만 결국 2002년 2월에 음독자살을 했고 병원에 있다 3월 26일에 숨을 거뒀다.”

-그는 왜 겨울에 시작한 건가. 
“김대중 정부가 만든 국민생활기초보장법에 대한 문제점 때문에 당시 자살하는 장애인이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여러 가지 조사를 강요하면서 사회적으로 낙인찍는 방식이다. 자의적 기준으로 산정되는 생계비와 턱없이 부족한 금액, 부양의무자 기준은 국가가 복지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빈곤 해결 방법을 사적인 공간, 가족에게 전가하는 형태다. 그때도 지금도 100만 명 이상이 최저생활도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옥란 열사는 이런 문제를 제기했고 투쟁했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고 알고 있다. 
“개인적인 위태로움도 컸다. 최옥란 열사는 이혼했지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양육권을 얻지 못했다. 자기가 키우고 싶었으나 그러질 못했다. 아이를 키우려고 청계천에서 노점을 했는데 몸이 더 안 좋아져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수급권자가 됐다. 소득이 있으면 수급권자가 되지 못했고 그러던 중에 수급권자가 됐지만 더 가난해져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인들의 소식이 들려왔고, 자신의 위기감과 함께 이런 현실을 두고 볼 수 없어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3, 4월이 돼 날이 따뜻해지면 싸우자고 말렸다.”

-돈으로 양육능력을 증명하라고 했던 건가. 
“돈이 든 통장을 보여줘야 양육능력이 있게 된다. 최옥란 열사는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서 통장에 돈을 넣었다. 그런데 통장에 돈이 있으면 수급권을 박탈당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했다.”

-좀 더 근본적으로 보면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막혀 있고,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최옥란 열사는 학교를 못 다녔다. 학교를 못 다녔다는 건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동생에게 글을 배웠다. 거기다 장애까지 있으니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된 상품으로 팔려가기 힘들다. 노동권을 원천적으로 부정당한 사람이었다.”

-장애인고용의무제도도 있는데. 
“장애인의 실업률은 비장애인에 비해 굉장히 높다. 1990년도에 장애인의무고용제도가 제정됐지만 지키지 않은 기업이 많다. 고용하기보다 벌금을 낸다. 장애인이 노동을 해서 살아가는 건 특히 힘들다.”

-최근에는 장애인을 비롯해 여성, 이주민의 노동력을 값싸게 활용하기도 하는데. 
“장애인의 경우, 노동자로서 임금을 받으면 수급권자로 받는 것보다 많다. 그런데 의료혜택 같은 걸 따져보면 노동자보다 수급권자로 사는 게 나은 편이다. 비정규직이 많아지면서 임금을 부족하게 준다. 장애인 노동권과 함께 이런 구조를 바꿔야 사회적 약자들이 노동에 참여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는 자신을 노동력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장애인은 어릴 때부터 ‘시설’에 격리돼 교육을 받으면서 사회화와 상품화 과정을 거친다. 어떤 점이 문제인가. 
“보건복지부는 ‘생활시설’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수용시설’이라고 부른다. 장애인들을 많게는 몇 백 명씩 시설에 가둔다.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배제시키는 방식인데 이걸 아름다운 복지라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시설은 인권침해, 성폭력,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다.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교육, 노동, 주거, 활동보조제도가 필요하다.”

-최옥란 열사 죽음 이후 10년 동안 장애차별철폐운동을 해왔다. 뭐가 달라졌나. 
“많이 달라졌다. 저상버스가 돌아다닌다.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활동보조인제도도 만들어졌다.”

-성과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다. 단적으로 저상버스는 늘었지만 버스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다.
“맞다. 달라졌지만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이 사회의 출발점이 0이라면 10년 전 장애인은 마이너스 100에서 헤매고 있었다. 지금은 마이너스 80이다. 사람들이 ‘장애인 복지 좋아지지 않았느냐’고 하면 되묻고 싶다. ‘당신들은 0에서 출발하지 않느냐’고…. 이걸 좋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 저상버스의 경우 서울시는 24% 도입했고 전국적으로 보면 12%다. 장애인 이동권만 봐도 아직 멀었다. 저상버스 24%면 장애인 이동권이 24%만큼 좋아졌나. 결코 아니다. 수치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인들이 이용하지 못하는 저상버스는 고철일 뿐이다. 왜 이용 못하나. 장애인은 버스 3대를 보내고 4대째 타야하기 때문이다. 100%가 돼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교육권,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버스 탈 일이 없는 거다.”

-김대중 정부 이후 장애인 관련법이 많이 생겼다. 
“2001년부터 2010년부터 장애인 관련법이 많이 제정됐다. 교통약자편의증진법, 특수교육법,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활동지원법 등 굉장히 큰 규모의 예산이 필요로 하는 법이 제정됐다. 그런데 예산은 투입되지 못하고 있다. 특수교육법 경우, 특수교사를 고용하지 않고 특수학급을 늘리려고 해도 사립학교가 저항한다. 교통약자편의증진법도 마찬가지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있다. 장애인의 권리가 4대강에 빠져 죽은 셈이다. 국가는 법을 지키지 않는 시민들을 집시법이나 온갖 법률로 다스리지만 자신을 강제하는 장애인 관련법은 무시한다.”

-예산을 이유로 복지를 시행하지 않거나 재정위기, 경제위기를 이유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를 축소하는 건 정부의 일관된 논리다. 여기에 저항하는 건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다. ‘다 같이 어려운데 너희 몫만 챙기려는 것이냐’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논리는 ‘야만적’이다. 결국 강한 자만 살고 약한 자만 죽는 이 사회를 그대로 인정하라는 얘기이다. 정글의 세계에 살라고 강요하면서 위기에 빠질 때마다 공동체를 얘기한다. 모순이다. 국가의 존립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돈은 물론 중요한 문제다. 노무현 정부 때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도화하라고 15억 원을 줬다. 이걸로 시범사업 하라고 했다. 비판하니까 돈 없다고 했다. 역대 어느 정부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 돈 없다고만 했다. 선거 때문에 사회적 약자를 이용하고 권력을 잡으면 철저히 무시한다. 이들의 뱃속에는 사회적 권리가 있다.”

-지난 총선에서 비례대표 제안을 받았는데 거절한 걸로 알고 있다. 제도보다 운동을 택한 셈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정당들은 장애인 몫으로 비례대표를 줬다. 어떻게 생각하나. 
“나는 국회를 ‘변소’라고 생각한다. 변소 들어갈 때는 똥오줌 못 가리니까 이 사람 저 사람을 찾는다. 그런데 볼 일 다 보면 느긋해진다. 그러면서 ‘내가 언제 그랬느냐’고 한다. 이게 지금 국회의 모습이다. 그들의 선한 의지, 공약에만 장애인 문제를 맡길 수 없다. 보다 진보적인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더라도 권력과 자본주의의 강고한 연대를 깨는 데는 한계가 있다. 물론 국회의 역할은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국회를 변소로 만들지 않으려는 대중투쟁이 필요하다. 이걸로 그들을 강제해야 하고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모든 운동의 결과가 국회로 향한다면 그건 옳지 않다.”

-장애인들의 시위에는 쇠사슬이 등장한다. 몸과 휠체어를 묶고 거리를 점거한다. 그래서 자주 연행된다. 이유가 뭔가. 
“노동자의 파업은 공장을 멈추는데, 장애인들의 투쟁은 도로를 점거한다. 장애인을 배제하고 가는 이 사회의 속도를 늦추는 의미이다. 자본주의의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도 그랬고 모든 인권운동은 도로를 점거하고 행진한다. 우리의 도로 점거는 함께 살기 위한 파업이다.”

-2012년 장애인은 어떻게 살고 있나. 
“최옥란 열사가 돌아가신 때와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으로 변했다. 그런데 장애인의 삶은 별반 다르지 않다. 여전히 장애인들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다. 극단적인 예로 정부는 장애인에 대한 프로그램에 돈을 많이 준다. 연극하라고 시키고, 어디어디 체험하라고 시킨다. 장애인에 대해서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게 아니다.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고 같이 일하고 버스 타고 출퇴근하는 게 이 둘의 간격을 줄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비장애인보고 역지사지하라며 휠체어 태우고 남산 꽃구경 시켜주는 게 방법인가. 장애인은 철저하게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게 2012년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최옥란 열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너무 일찍 갔다. 그래서 10년 동안 나머지 장애인들이 고생하고 있다. 하늘에서라도 힘을 주고, 우리들보고 잘 싸우라고 꿈에 나타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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