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억압을 직시하고, 성차별적 구조와 그 토대에 맞서자

- 강남에서 발생한 여성 살해사건에 부쳐


- 성차별적 구조와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


한 여성이 살해당했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여성이어서 그녀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살인의 정확한 동기와 당시 가해자의 마음가짐을 완전히 꿰뚫어보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이것이 성차별로 인한 혐오범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아무런 맥락 없는 진공 속에서 서로 맞닥뜨리게 된 것이 아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이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라는 맥락이 존재하며, 가해 남성이 피해 여성에게 범행을 저지르기로 결심하는 데에 이 구조는 분명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가해자 남성은 살해를 결심한 뒤 남성과 여성을 모두 맞닥뜨렸음에도, 남성은 보내고 여성을 표적으로 골라 살해했다. 그가 사회에 대한 적개심을 갖고 “누구라도 죽이려고” 나섰을 때, 왜 그 대상은 여성이 되었는가? 만약 여성이 피억압집단이 아니었다면, 여성에 대한 폭력이 ‘폭력’으로 규정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사회가 아니었다면, 그가 여성을 살해대상으로 선택했을까?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은 너무도 쉽게 혐오와 억압에 시달린다. 여성에 대해 지속되어온 혐오적 발언과 비인간화, 성적 대상화는 이 사건과 유리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이 사건을 배태한 구조이며, 여성에 대한 폭력의 연결고리를 이어온 사슬이다.


- 성차별을 지우려는 시도에 맞서


그러므로 이 사건을 극악무도한 개인에 의한 경악스러운 범죄로 규정하는 태도는 기만적이다. 우리는 그 개인을 낳은 구조를 봐야 한다. 경찰과 수구언론, 혐오집단들은 이 사건을 가해자의 개인적 속성이 낳은 특수한 일로 덮어두고자 한다. 경찰이 동원한 ‘전문가’들은 이를 정신질환에 의한 범죄로 명명하려 한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지워버리려는 시도이다. 이런 범죄를 막기 위해 정신질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겠다는 경찰청장의 발표를 보면, 국가와 수구 세력이 이 사건에 대한 명명으로부터 얻어내려는 것이 너무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우리는 이러한 시도에 맞서 구조를 고발해야 한다. 가해자의 정신병이 발현된 방식은 결국 성차별적 사회 맥락과 분리되지 않는다. 여성을 둘러싼 성차별적 구조는 그들을 피억압집단으로 만들며, 그들에 대한 폭력은 이 구조로 인해 정당화되어왔다. 단순히 신체적으로 더 약하기 때문에 여성이 범죄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적 관계와 구조 속에서 폭력이 배태된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개인적 속성에만 주목하며 문제를 개인화하거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자연화하는 것은 본질을 은폐하고 구조에 대한 변혁의 가능성을 사장시킨다. 이는 궁극적으로 성차별적 구조 따위는 없다고 주장하며, 피해여성을 추모하는 장소에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를 기억하자”는 화환을 보낸 혐오집단의 논리와 같은 선상에 있다. 이들과 함께, 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를 성별대립 조장으로 매도하는 세력 역시 마찬가지로 반동적이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기존의 사회구조적 여성혐오의 존재를 사상하고, 그에 대한 도전을 남성 개인에 대한 비난으로 격하한다. 이 사건을 혐오범죄로 명명하고 성차별적 구조에 맞서 싸우자는 움직임은 ‘남성혐오’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에 대한 정치적 도전이며, 그 정치성을 지워서는 안 된다.


- 여성억압을 마주하고 변화를 위한 움직임에 모든 성별이 연대하자

구조의 맨얼굴을 마주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단순히 여성이 사회적 약자고, 피억압집단이라고 말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를 계기로 여성억압에 맞서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피해 여성을 추모하는 것은 그렇기에 성차별적 구조를 인식하고 그에 맞서 싸워나가겠다는 아주 정치적인 선언이자, 변혁적 가능성을 내포한 결의다. 우리는 추모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여성 억압의 문제를 바라보고 정치적 움직임을 만들어가야 한다. 여성억압은 어디에서 오며, 이를 재생산하는 기제는 무엇인지, 결국 성차별적 구조를 통해 이익을 보고 있는 세력이 누구인지를 똑바로 꿰뚫어봐야 한다. 단순히 개개인이 가진 여성혐오를 악마화하고 혐오가 나쁘다고만 말하는 것을 넘어서서, 여성이라는 피억압집단에 억압과 폭력이 가해지도록 만드는 사회적 토대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여성에게 폭력과 혐오가 표출되는 동안,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억압하고, 군대를 유지하여 성차별을 조장하고, ‘천안함 용사’를 죽이는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이 구조다. 이 구조에 맞서는 움직임에는 여성, 남성이 없다. 대립해야 하는 것은 현재의 억압적 구조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그에 맞서는 세력일 뿐,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이 아니다. 성별에 관계없이 억압적 구조가 자신 안에 드리운 그림자를 인지하고, 방관을 멈추고 거부와 실천을 시작해야 한다. 가해자를 배태하는 구조의 모든 면을 살피며, 이 구조를 끊어내는 실천을 모든 성별의 연대로 함께 마련해 나가자. 그것이 여성억압에 맞서 싸우는 길이다.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

제 34대 사회대 학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