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농민의 죽음,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20151114, 물대포 직사를 온몸으로 맞고 백남기 농민은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채 다른 시민들의 부축을 받아 실려 가는 순간까지도 우리의 정의로운 치안당국은 물대포 조준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것이 농민의 1년 가까운 병상 생활의 시작이었다. 사과는 없었다. 오히려 여당은 불법시위자의 응당한 말로라는 취지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의 임종이 가까워지자 경찰병력은 또다시 병원을 에워싸 이제는 농민의 육신마저 앗아가기 위하여 그 마지막 숨이 끊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저지하려는 시민들이 농민의 곁을 지켰다.

 

농민은 무엇을 위하여 싸웠던가? 그 싸움의 목적은 농민이 스스로에 대한 최소한의 존엄조차 지키지 못하는 최후를 맞게 할 만큼 악질적이고 질서 파괴적인 것이었는가? ‘쌀 수매 가격의 현실화라는, 생존의 위협에 대한 정당한 항의의 목소리는 국가에 의하여 불법 폭력 시위로 규정되었다. 치안당국의 막강한 물리력 앞에 시위자는 무력하게 쓰러졌다. 그리고 이제 그 물리력은 이미 식어버린 농민의 육신마저 위협하고 있다. 놀랍게도 국가는 이 모든 과정을 합법적인 질서의 수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법이라는 것이 한 시위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하여, 더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부당한 권력의 행사에 대하여 민중이 침묵하게 만드는 도구일 뿐이라면, 왜 우리는 스스로의 행동을 합법과 불법의 프레임 속에 가둬야 하는가? 준법의 기치가 얼마나 중요하기에 우리는 누군가의 존엄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보고도 저항할 수 없는가? 중요한 것은 합법이냐 불법이냐가 아닌, 바로 우리 삶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다.

 

지난 4.13 총선에서 우리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분명히 물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무엇이 바뀌었는가?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문제 해결이라는 말은 이토록 공허한 것이다. 법은 중립적이지 않다. 정중한 부탁으로는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실제적 행동으로만 지켜낼 수 있다.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하여 매일 저녁 7시 촛불집회, 그리고 앞으로 있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에 함께하자.

 

 

34대 관악 사회대 학생회 [피움]

 *위 자보는 103일 제31차 사회대 단대운영위원회 14단위 중 13단위 참석, 만장일치 찬성으로 인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