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규직법 개악안과 노사관계로드맵 통과에 부쳐



대량 해고, 벌써부터 시작이다!

 법원 경비원 ㄱ씨는 지난해 12월 27일 갑작스레 해고됐다. 종무식을 이틀 앞두고서다. 비정규직 근로자인 ㄱ씨는 재계약될 것을 믿어왔다. 그는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줄 알았는데 한 마디 예고도 없이 해고됐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2007년 1월 3일자

 송원식(29ㆍ가명)씨의 새해는 우울하다. 지난 연말 그는 3년 동안 계약직으로 다녀 온 유명 전자회사에서 해고됐다. 입사 때부터 ‘말만 계약직이지 10년이고 20년이고 일할 수 있다’던 회사 측의 태도가 바뀐 건 지난해 2월 비정규직 보호법이 나오면서부터다. “회사로선 ‘고용한 지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줘야 한다’는 법 규정이 부담스러웠겠죠. 2년 넘은 사람들부터 쫓아내더니 저도 결국 못 버티고 나왔어요.”
─ 한국일보 2007년 1월 5일자

 지난 2006년 말, 이 땅의 노동자들은 국회로부터 비정규직법 개악안과 노사관계로드맵 통과라는 두 발의 직격탄을 얻어맞았다. 이미 일하는 사람들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일반적인 형태로 확산시키고, 이에 반항하면 군소리 못하게 찍어 누를 수 있는 권리를 기업가들에게 부여하는 악랄한 법안들이 통과된 것이다.

 이 법안들의 효과는 법안이 발효되는 올 7월이 되기도 전에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2일 전국 법원의 계약직 경비원 40여 명에 대해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며, 광명시에서는 불법 광고물을 철거하는 비정규직들을 계약 만료 시기까지만 고용하고 해고하였다. 이외에도 국립제주대학병원이나 한국기계연구원 등 공공부문에서부터 앞다투어 기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이를 용역을 비롯한 간접고용의 형태로 외주화하고 있다. 이렇듯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해야 할 공공부문에서부터 앞장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으며, 이는 이런 일들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던 민간부문 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에 박차를 가하게 하고 있다.

비정규직 ‘보호’ 입법안?,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 모두 기만이다!

 소위 비정규직 ‘보호’ 입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한답시고 기업주들에게 2년간 비정규직으로 일한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기업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계약기간이 만료되기 직전에 해고하고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행태를 계속해 왔다. 비정규직 직제 자체를 철폐하지 않고 단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형태를 변화시키겠다는 이 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는커녕, 2년마다 고용주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자신의 벌이를 연장시켜야 하는 불안정한 현대판 노예를 양산할 뿐이다.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라는 노사관계로드맵은 또한 어떠한가? 이 법안은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피흘려 싸워 얻어낸 노동3권을 말살하는 희대의 악법이다. 사용자의 이익에 철저히 봉사하는 어용노조가 판치는 현실에서, 복수노조 허용을 3년 더 유예한다는 결정은 노동자들의 민주노조에 대한 꿈을 더욱 멀어지게 하였다. 재정상태가 열악한 군소 노조들의 기반을 뿌리부터 뽑아버릴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도 이제 3년 앞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전기, 철도, 수도, 항공운수 등을 비롯한 여러 ‘공공’사업장들에서 파업투쟁이 일어났을 때, 이를 무력화할 수 있도록 아예 대체인력을 마음대로 투입할 수 있게 해 놓았다. 공장을 멈추지 못하는 파업이 어떻게 파업일 수 있단 말인가. 노동자들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정이 나더라도 원직복직 대신 돈으로 보상할 수 있도록 해 놓은 규정은 또한 어떠한가? 아예 노동자들의 파업을 원천 봉쇄하고, 그 효과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며, 아무리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더라도 기업가들이 돈 몇 푼으로 때울 수 있도록 해 주는 길을 완전히 터놓아 준 셈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게 될 노동법 개악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강력한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하였다. 법안들이 통과된다는 소식이 속속 들려오면서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그것은 몇몇 노총 간부들만의 부분파업이나, 몇 번의 국회 앞 집회라는 모습으로밖에 드러나지 않았다. 이러한 무기력한 대응 속에서 국회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비웃으며 손쉽게 악법들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법안 통과 이후의 무기력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지금 사업장 곳곳에서는 여러 투쟁의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30년 가까이 근무해 온 건물에서 하루아침에 계약해지를 당하게 된 대우건설 건물 시설 노동자들, 고용을 불안하게 할 외주화에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쫓겨나게 된 KTX 및 새마을호 승무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개악안이 직격하게 될 비정규직 사업장에서부터 노동자들이 고용안정과 생존권 쟁취를 위해 사활을 걸고 싸움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문제해결을 방기하였던 민주노총의 투쟁방식에서 벗어나, 연대를 통하여 개별 사업장에서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이를 바탕으로 승리의 결과물들과 자신감을 더 큰 힘들로 묶어낼 때만이 국가와 자본의 탄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일하는 사람들의 삶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는 시대에, 불안에 떨면서 살 수만은 없다! 적극적인 반대와 투쟁에의 연대로, 우리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어버릴 비정규직 확산의 움직임을 막아내기 위한 실천적인 방안들을 찾아 나가자!



2007년 1월 8일
사회과학대학 학생회 집행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