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노동자의 분신과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 체결

 4월 1일.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한 택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몸에 불까지 붙인 것이다. 발언권 없는 우리 국민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실이었다. 당연히 노무현 정권 측에서 자신들의 정책을 충분히 설득해야 하면서 국민들의 이야기도 들어야 하는데, 이런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런 국민들의 이야기에 대해 아예 귀까지 막아버리며 한미FTA를 ‘무조건 체결’하려는 노무현 정권의 태도가 한 택시 노동자의 몸에 불을 붙인 것이다.

 4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 체결”을 발표했다. 한 명의 국민이 자신의 몸에 불까지 붙여가면서 이야기한 것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답이었다. 이미 예상된 답이기도 했다. 2004년 이라크 파병을 기어코 함으로써 ‘김선일’ 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노무현 정권이었다. 2006년 한미FTA 농업부분 개방에 반대하는 ‘홍덕표’ 열사를 전경의 곤봉과 방패 아래 돌아가시게 했다. 2007년 ‘윤장호’ 하사는 파병지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권의 ‘독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검사들과의 대화’를 했던 것이 기억난다. ‘권위주의’를 탈피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권 말기의 모습에서 드러나듯이 노무현 정권의 탈권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는 정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말을 빌려본다.
 “노무현 대통령,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죠?”

국민의 이익 없는 국익

 “한미FTA를 체결해야 국익을 챙길 수 있다.”
 지겹게 들어온 한미FTA 체결의 근거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저들의 ‘국익’ 속에, 故 김선일, 홍덕표, 윤장호 씨의 생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택시 노동자의 생존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국익이란 말인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한미FTA는 우리나라 기업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줄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기업이 살면, 완전고용도 이룰 수 있고 일하는 사람들의 삶도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국익’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미FTA’는 기업을 살리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미국의 기업들도 우리나라의 시장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두 국가 기업들의 전쟁이 이제 곧 우리나라 시장에서 벌어질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그 전쟁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효율성’이라는 이름 속에서, “미국 기업들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참자. 우리 서로 ‘고통분담’하자.”는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가진 자들은 부담 지는 것 없는 그 ‘고통분담’ 말이다.

 효율적인 ‘경영 논리’를 들면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화’ 될 것이고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더 많은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런 사회 속에서 장애인들은 ‘효율적이지 못한 존재’가 된다. 고등교육의 ‘수월성(효율성 사촌뻘)’을 들면서 미국 대학과 경쟁하기 위해 재원이 많이 확보되어야 한다며 대학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오를 것이다. 이것이 저들이 말하는 ‘국익’이란 말인가.

국민 없는 한미FTA는 무효

 노무현 정권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한미FTA를 체결했다. 이제 이 한미FTA의 폐해가 각 일터에, 학교에, 일상에 드러날 것이 예상된다. 이미 체결된 조항이니 이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다. 국민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도 않은, 그리고 국민들의 이익은 존재하지 않는 한미FTA를 우리가 무시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협상이 아니다. 저들의 협상일 뿐이었다. 저들 마음대로 결정한 것일 뿐이다. 저들의 목적에만 합당한 협상이었을 뿐이다.

 우리가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국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협상이고, 그것이 국민들의 이익을 반영하지 못하는 협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영향 속에서 국민들의 생존권이 박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답은 나왔다.

 “한미FTA를 무효화시켜 버리자.”
 학교에서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지켜내고, 우리의 사회 속에서 장애가 더 이상 차별이 아닌 차이가 될 수 있도록 장애인들의 권리들을 확장하자.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차별 받는 일이 없도록 만들자. 노동자가 경영상의 이유로 하루아침에 자신의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하자. 이런 것들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한미FTA는 한낱 종이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한미FTA를 무효화시킴으로써, 몸에 불을 붙이신 택시 노동자를 포함한 우리 국민들은 진정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진보의 요람 사회과학대학 학생회